국제앰네스티는 오늘 발표한 브리핑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공공기관·기업이 점령된 가자 지구에서 계속되고 있는 집단학살과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서의 불법 점령,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통제하는 잔혹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방관·지지하거나 직접 가담하며 이러한 국제 범죄를 장기화하고 수익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브리핑 보고서에는 각국 정부와 기업이 즉각 취해야 할 조치가 담겨 있다.
아녜스 칼라마르Agnès Callamard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는 국가, 공공기관, 기업, 대학, 그리고 민간 주체들이 경제적 이익과 이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살인적인 중독을 끊어내야 한다. 57년에 걸친 불법 점령과 수십 년간의 아파르트헤이트는 무역과 경제적 유착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에 제공된 지속적 지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23개월간 계속된 무차별 폭격과 여전히 진행 중인 집단 학살에는 무기와 감시 장비가 끝없이 공급되어야 했다. 이는 이러한 반인도적 행위에 눈감으며 무역 관계에 특혜를 준 국가와 기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상황은 이제 끝나야 한다. 인간의 존엄은 상품이 아니다.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이 굶어 죽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동안 군수 업체를 위시한 이익집단은 여전히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회원과 지지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국제 범죄를 지탱하는 정치·경제 체제의 종식을 함께 요구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
오늘 발표한 브리핑 보고서는 각국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즉시 취해야 할 조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에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기업을 퇴출시키고 배제하는 것부터, 실효성 있는 법안과 규제를 마련하는 것, 투자나 발주를 철회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것 등이 있다. 특히 기업은 이스라엘에 대한 제품 판매를 중지하고, 계약을 보류하거나 투자를 철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불법 점령과 집단 학살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국제 범죄에 가담한 기업 15곳을 공개한다. 여기에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 보잉Boeing과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이스라엘 군수업체 엘빗 시스템즈Elbit Systems와 라파엘 어드밴스드 디펜스 시스템스Rafael Advanced Defense Systems,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srael Aerospace Industries, IAI, 중국의 하이크비전Hikvision, 스페인 철도차량 제조사 CAFConstrucciones y Auxiliar de Ferrocarriles, 한국 대기업 HD현대,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 이스라엘 테크 기업 코르사이트Corsight, 그리고 이스라엘 수도공사 메코롯Mekorot이 포함된다.
물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들 15개 기업이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인의 기본권을 짓밟고 집단 학살과 기아를 체계적으로 자행한 지배 체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 분야와 대다수 국가, 그리고 수많은 민간 기업들이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과 점령지 전역에서의 잔혹한 불법 점령,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에 가담하거나 여기에서 이익을 얻었다.”
이번 국제앰네스티의 긴급 권고안은 이스라엘이 12개월 안에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불법 점령을 끝낼 것을 요구한 2024년 9월 18일 유엔 총회 결의안 채택 1주년에 맞춰 발표되었다. 앞서 국제사법재판소는 2024년 7월에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인을 겨냥한 차별적 법률과 정책이 인종 분리 및 아파르트헤이트 금지 원칙에 위배됨을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점령지 주둔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조속히 종식시켜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유엔에서 채택된 결의안은 이러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을 실행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어서 유엔 총회는 각 회원국에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을 이행하고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을 끝내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조치에는 ‘자국 국민·기업·기관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지원하거나 지속시키는 활동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중단하는 것, 점령지에서 사용될 우려가 있는 무기·탄약 및 관련 물자의 제공을 중단하는 것’이 있으며, ‘이스라엘의 불법 주둔과 연계된 개인·기관에 대해 여행 금지 조치와 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시행하는 것’ 또한 포함되었다.
“유엔 총회 결의안이 12개월로 제시한 점령지 철수 기한이 오늘로 만료되었음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인들을 굶주림에 빠뜨리며 매일 학살을 이어가고 있다. 회원국 대부분은 이스라엘을 압박하기 위해 사실상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관자적 태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의 국제 범죄에 가담하는 모든 활동을 즉각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아파르트헤이트와 집단 학살에 일조하며 인류에 대한 국제 범죄의 공범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제앰네스티는 각국 정부가 무기와 군사·보안 장비 및 서비스, 그리고 감시·경비·군사 활동과 연관된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인프라의 공급을 즉각 금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항구, 공항, 영공, 영토 등 자국의 관할 지역을 거쳐 이스라엘로 유입되는 무기나 군사·보안 장비, 혹은 관련 부품이 있다면 운송과 환적을 금지해야 한다.
아울러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아파르트헤이트, 불법 점령에 기여하는 기업에 대한 거래·투자 중단을 촉구한다. 최소한 팔레스타인 점령지 인권 상황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보고서UN Special Rapporteur on the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the OPT와 불법 정착촌 관련 기업 UN 데이터베이스에 거명된 기업이라면 즉각 거래와 투자를 중단하고, 자국 기업이 이러한 제재를 철저히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과 국제 범죄에 기여하는 기업들
국제앰네스티는 수년간 여러 기업의 인권 침해 사례를 기록했으며, 이 브리핑에서 언급된 모든 기업에 서신을 보내 이스라엘과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기업 활동에 관해 질의하고 인권 침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2025년을 기준으로 답변을 보낸 기업은 다섯 곳에 불과하며, 답변 내용은 브리핑 문서에 반영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점령지 가자 지구를 공습하는 데에 보잉Boeing사의 폭탄과 정밀유도 키트가 사용된 사실을 기록하였다. 특히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전역에서 어린이를 비롯하여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공습을 벌일 때 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s 합동직격탄이나 GBU-39 소구경 정밀 유도탄과 같이 보잉사에서 생산한 군사 장비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은 F-16 전투기와 이스라엘 공군의 핵심 전력인 F-35 전투기의 공급과 정비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 전투기들은 지금까지 가자 지구 폭격에 대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3대 방산기업인 엘빗 시스템즈Elbit Systems와 국영기업 라파엘 어드밴스드 디펜스 시스템스Rafael Advanced Defense Systems, 그리고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은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군사 및 보안 장비를 이스라엘군에 납품하고 있다. 이들이 공급하는 장비에는 감시용 드론과 무장 드론, 체공형 자폭드론loitering munitions, 국경 보안 시스템 등이 있으며, 이 장비들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와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진행되는 군사 공격에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위의 방산기업 중 국제앰네스티의 추가 정보 요구에 유일하게 회신을 보낸 엘빗 시스템즈는 ‘국제사회가 주권을 인정하고 제재하지 않은 정부’에 합법적으로 납품하는 것이라며 국제앰네스티의 문제제기를 일축해 버렸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 하이크비전Hikvision의 감시 장비를 활용하고 있으며, 가자 지구에서의 군사작전에는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판매사 코르사이트Corsight의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인공지능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는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에 AI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기술은 가자 지구에서의 군사 활동과 연계되고 있다.
서안 지구의 수도 시설을 관장하는 이스라엘 수도공사 메코롯Mekorot은 팔레스타인인을 차별하고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에 유리한 방식으로 수도 체계를 운영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기여하고 있다. CAFConstrucciones y Auxiliar de Ferrocarriles는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을 용이하게 하는 예루살렘 경전철Jerusalem Light Rail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HD현대는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의 불법 철거에 사용되는 중장비를 생산·정비·운용하고 있다.
2019년, 국제앰네스티는 에어비앤비Airbnb, 부킹닷컴Booking.com, 익스피디아Expedia,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등 주요 온라인 여행 플랫폼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 내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의 유지·공고화·확장에 기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착촌 관련 사업에서 책임 있게 철수할 것을 촉구하였음에도 이들은 아직까지 정착촌 내 숙소들을 검색 결과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이들 기업이 인권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과 국제법 위반 범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연루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업 임직원과 이사진은 민사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으며, 이스라엘의 범죄를 방조·교사한 혐의로 형사 책임을 질 가능성도 있다.”라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들 기업이 무기와 군사·보안·감시 장비 일체를 비롯하여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 내 인권 침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중장비와 부품, 물자와 서비스의 판매와 공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들은 투자를 철회하거나 구매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해당 기업들을 압박해 이러한 판매가 중단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각국 정부는 이들 기업이 이스라엘에 공급하는 제품군과 관련된 무역 박람회나 정부 회의, 계약, 연구 보조금, 공적 사업 등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제해야 한다. 이 모든 조치는 해당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이나 국제법상의 범죄에 더 이상 가담하지 않음을 증명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한다.
아녜스 칼라마르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시민들이 평화적 행동으로 연대해 줄 것을 호소한다. 시민사회와 대중은 각국이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이스라엘의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기업들이 책임을 지도록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자신들의 수익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과 터전을 파괴하고 극심한 고통을 주는 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못 본 체하고 사업 모델을 유지하며 부를 쌓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겪는 그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은 1분이라도 더 외면해선 안 된다.”
배경
2024년 1월, 집단학살 방지 협약Genocide Convention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의 권리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할 실질적 위험이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이스라엘에게 집단학살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는 모든 국가에도 집단학살을 방지·억제·처벌할 의무가 있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같은 해 3월과 5월에 재차 동일한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한 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24년 9월,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며 12개월의 시한을 부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추가 결의안을 채택해 이스라엘이 1967년 이후 점령한 모든 팔레스타인 영토(동예루살렘 포함)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진 불가침의 권리를 보장할 것과 각국이 불법 정착촌에 원조나 조력을 제공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